“예루살렘의 성벽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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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Date
2016-01-3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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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성벽의 변천사


예루살렘의 성벽의 변천 과정을 통해서 예루살렘의 역사를 구분하고 파악할 수 있다. 예루살렘은 많은 무력충돌과 군사적 정복으로 시대가 변할 때 마다 파괴가 발생하였다. 이외의 평화로운 시기에는 증축이 이루어 졌다. 그렇기 때문에 성벽의 변천 과정을 통해서 예루살렘의 역사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1. 1 성전시대 이전


1) 여부스 족이 거주한 시대

2) 애굽통치 시대

3) 다윗왕 시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에 예루살렘 지역을 수 차례 침공했지만 여부스족이 견고하게 수호하였다. 예루살렘의 북쪽에는 베냐민 지파가 남쪽은 유다 지파가 인접하고 있었다. 다윗은 주전 1000년경에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오벨 언덕에 도시를 세워 다윗성이라 칭하고 수도로 삼았다. 또한 기럇여아림에 있던 언약궤를 성안으로 옮겨와 정치와 종교적인 중심지로 만들었다.


2. 제 1 성전시대


1) 솔로몬왕 시대

다윗성은 오벨 언덕이 중심지였으나 솔로몬왕은 북족으로 확장하여 모리아산을 중심지로 하였다. 그곳에 언약궤를 모실 성전을 7년간에 걸쳐 건축하여 주전 959년에 완공한 후 화려한 궁전을 13년간에 걸쳐 건축하여 주전 936년에 완공하였다. 또한 성벽을 견고하게 쌓았다. 이 때를 제 1 성전시대의 시작으로 본다.

2) 분열왕국 시대

솔로몬왕이 죽자 이스라엘 땅은 북 이스라엘 왕국과 남 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어 북 왕국은 여로보암이 세겜을 수도로 하였고 남 왕국은 솔로멘에 이어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여 분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남 유다 왕국의 히스기야왕은 앗수르의 산헤립으로 부터 침범을 막기 위하여 성벽을 확장 보수하였다. 그 규모는 솔로몬 시대 보다 거의 3배가 될 정도로 크게 확장되었다. 또한 성 밖에 있는 기혼샘부터 성 내의 실로암 못까지 땅 밑 암반을 터널로 뚫어 길이 533m의 수로를 만들어 성안에 물을 공급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도 물이 풍부하게 흐르고 있다. 그러나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게 주전 586년에 남 유다 왕국이 멸망하게 될 때에 도시와 솔로몬 성전이 파괴 되었고 제 1성전시대가 끝났다.

3. 제 3성전시대


1) 느헤미야 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한지 50년이 지나자 주전 538년 페르시아왕 고레스에 의해 칙령이 내려졌다. 그 다음 해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 스룹바벨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솔하고 돌아와 주전 515년에 성전을 재건하였다. 이 때를 제 2의 성전시대의 시작이라 한다. 주전 445년에 느헤미야는 유다 총독에 임명되어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성곽 중수에 전력하여 52일만에 왕성하였다. 성벽은 솔로몬 성벽과 흡사하나 그 규모는 훨씬 작았다. 이 때부터 이스라엘은 잠시 평온을 찾게 되었으며 예루살렘에서 중심 역할을 하였다.

2) 하스모니아왕국 시대

주전 332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한 후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되어 프톨레미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주전 168년에 악명 높은 안티오쿠스 4세에 의해 예루살렘의 전 시가지는 파괴되고 성전은 짓밟혔다. 이에 반항하여 하스모니아 출신 마카비 형제들이 반란을 일으켜 승리함으로서 예루살렘성을 다시 회복하여 서쪽의 시온산과 남쪽의 다윗성 방향으로 성벽을 확장하였다. 그러나 하스모니아 왕가의 내분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서 다시 혼란이 빚어지게 됨에 따라 주전 63년에 로마의 폼페이에 의해 점령되어 로마의 관할 하에 들어 갔다.

3) 헤롯왕 시대

에돔 출신 헤롯이 로마 황제의 총애를 받아 유대인왕으로 등극하였다. 헤롯대왕 때에 예루살렘 성벽을 북쪽으로 좀 더 확장하였고, 기존 성벽 안에 성전을 보수하였다. 또한 이스라엘 전역에 많은 요새와 도시를 만들어 유사시에 대비 하였다. 즉 헤로디움 요새, 마사다 요새, 가이사랴, 사마리아, 여리고 등에 그 유적들이 남아있다. 이 때의 성이 예수님 시대의 예루살렘 성이다.

4) 헤롯 아그립바왕 시대

예루살렘성은 헤롯대왕의 손자 아그립바왕 때에 더욱 확장하여 성의 규모가 가장 컸다. 이 때에 로마의 행정권에 들어가 유대인들은 탄압을 많이 받았다. 주후 66년에 로마에 대항하여 유대인들은 제 1차 대반란을 일으켰으나 주후 70년에 로마의 티투스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성과 성전이 파괴됨으로 제 2성전시대가 끝났다. 이 때에 유대인들은 모두 예루살렘성에서 추방되었다.

4. 그 이후의 시대


1) 로마시대


로마 하드리안 왕조가 예루살렘을 통치할 때 주후 132-135년에 유대인들의 제 2차 바르코크바 반란이 일어났다. 로마는 두 번의 반란이 있은 후에 유대인들에게 큰 보복을 가하였다. 로마 하드리안 황제는 당시 유대라는 이름의 지명까지도 지도에서 지워버리기를 원하여 팔레스타인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것은 이 땅이 유대인들의 당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적인 블레셋 사람들의 땅이라는 의미로 유대인들에게 상처를 주기 위함이었다. 또한 예루살렘의 이름도 엘리아 카피톨리나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바꾸고 예루살렘 성에 쥬피터 신전을 건축하였다. 이 때에 예루살렘성의 규모가 축소되고 로마 양식에 따라 예루살렘성 내의 건물들이 한 건물처럼 보이도록 하고 건물과 건물사이에 복도식의 도로가 연결되는 로마식 도시로 변하게 하였다.

2) 비잔틴시대

로마 시대로부터 비잔틴 시대로의 변화는 제국의 수도가 로마로부터 비잔틴으로 옮겨가는 데서 시작된다. 주후 313년 콘스탄틴 황제는 기독교를 밀라노에서 내린 칙령으로 공인하게 됨으로 예루살렘은 종교적, 정치적인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많은 장소에 기념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즉, 골고다 언덕 위에 예수님 무덤교회, 베들레헴에 예수님 탄생교회, 감람산에 예수님 승천교회 등을 건축하였다. 이 시대의 건축양식의 특색은 교회 바닥에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채색한 것이다. 예루살렘성은 에우도니카 황제에 의해 서족에 위치한 시온산과 남쪽에 위치한 다윗성터가 다시 성벽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3) 회교아랍 시대

모하메드에 의해 창시된 회교도들은 페르시아와 비잔틴 제국을 차례로 정복하였다. 주후 638년에 예루살렘성은 회교 아랍국의 오마르왕에 의해 점령된 후 약 450년간 회교의 영향을 받았다. 예루살렘성 내에는 모리아산에 바위사원, 엘악사사원이 건축되어 메카와 메디나와 더불어 회교도들의 3대 성지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한편,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많은 기독교의 교회가 대부분 이 시대에 파괴 되었기 때문에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자극받아 성지 탈환을 목표로 한 십자군 형성의 동기가 되었다.

4) 십자군 시대

주후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에 의해 소집된 십자군은 여러 차례의 실패를 거듭하였지만 주후 1099년 6월 15일에 예루살렘을 탈환하였다. 첫 번째 왕위에 오른 볼드윈 1세는 많은 회교도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사원을 파괴했으며 곳곳에 튼튼한 요새를 건설하였다. 또한 비잔틴 시대에 세워졌던 교회가 파괴되었으므로 그 터 위에 다시금 웅장한 교회가 세워졌다. 당시 건물의 특징은 규모가 크고 높은 편이나 사용한 돌은 섬세하지 못하였다. 그 대표적인 교회가 스테반문 안에 있는 성안네 교회이다. 이 때부터 유럽으로부터 많은 성지 순례자들이 성지를 방문하였다. 그러나 주후 1187년 회교국의 살라딘 장군에게 패배하게 되어 주후 1291년 십자군의 최후의 보루였던 악고가 무너짐으로써 십자군 시대는 막을 내리게되었다. 이 때에 유대인들은 박해를 당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도시의 규모가 작아졌고 성벽 안에 위치한 시온산과 다윗 성터가 다시금 성벽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5) 오스만 터키시대

터키, 오스만제국의 살림왕에 의해 주후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된 후 1516년 이스라엘에 이어서, 1517년에 이집트가 정복되었다. 슐레이만 대제가 1537년에서 1542년 사이에 현재의 예루살렘성을 수축하여 그 당시의 성벽과 성문이 오늘 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이 기간 동안에 유럽과 러시아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헤르츨을 중심으로 시온주의운동을 전개하면서 새로운 이스라엘 건설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되었다.

6) 현재


현 예루살렘성은 오스만 터키시대에 슐레이만 대제에 의해 수축하여 오늘 날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성벽의 높이는 평균 17m이며 총연장 길이는 약 4km로서 성벽 상부에 34개의 망대탑과 곳곳에는 현대전에 필요한 총안국와 같은 형태로 방어에 유리하도록 축성되어 있다. 그리고 성벽내부의 면적은 1 제곱키로미터로서 구 시가지는 4개의 지역으로 구분되고 있다. 내부의 북쪽은 기독교인 지역, 북동쪽은 이슬람인 지역, 서남쪽은 아르메니아인 지역, 동남쪽은 유대인 지역으로 구분되어 각각 거주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다윗성과 시온성은 현 성곽 밖에 위치하고 있다.예루살렘 성곽에는 16세기 재건 될 당시에는 6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그 중 세 개의 욥바문, 다메섹문, 시온문은 옛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성문은 ㄴ자 형태로 굽어 들어 가도록 건축한 것이 특색인데 적으로부터 방어에 유리하도록 한 것이다. 주후 1887년에 다메섹문과 욥바문의 중간지넘에 새 문을 만들었다. 현재는 성문이 8개인데 황금문이 닫혀 있으므로 7개의 성문이 개방되어 있다. 각 성문마다 두 세개의 전해져 내려오는 명칭이 있어서 혼돈하기가 쉽다.

참고 : (지도,도표,사진으로 보는) 성서의 역사와 지리, 김흔중 지음, 엘맨 출판사사진

출처 : 위와 동일,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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